옷은 훌륭한 장비 - 스트립쇼 바에서 영업을 처음 시작한 칼리 피오리나 한 때 포춘(fortune)지가 지목한 '세계 최고의 여성 CEO'로 유명한 여성 인사였으나 이제 우리의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진 칼리 피오리나. 그녀의 자서전으로 제목이 <칼리 피오리나 : 힘든 선택들 (영어로는 though choice)>이다. HP 에서 물러난 후 HP와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자신의 어린 시절과 커리어의 성장기를 담았다. 오래 전에 출판 된 것이지만 여성 기업인의 자서전이 워낙 드물기에 참고할 내용을 찾으려고 가끔식 뒤적이고 있다. 자신에 대한 변명을 하기 위한 책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 차별의 비즈니스 현장에서 열심히 헤쳐나간 스토리가 여러 차례 나온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며 제일 먼저 눈에 뜨인 것은 바로 19번째 글. <그거 아르마니 슈트인가요?> 이다. 내용은 단순하다. 남성 기업인에게는 하지 않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아야했던 사례이다. 비즈니스 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자리에 앉기도 전에 받았던 질문이 바로 "지금 입으신 옷이 아르마니 슈트인가요?" 라는 것이다. 비즈니스 위크인데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다른 기업인에 비해 더 주목 받은 이유는 그녀가 여성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성은 패션과 밀접한 존재라는 고정관념이 지구인에게 있다. 이것은 사실인가? 나는 그래야 한다고 세상이 강요하고 있을 뿐이라고 본다. 실제로 모든 여성은 모든 남성보다 패션감각이 뛰어날 수도 없고 그래야할 이유도 없다. 다만 그래야 한다는 암묵적 요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이 이야기는 하자면 너무 길다. 그래서 오늘하려는 이야기로 가자.) 모든 사람이 패셔너블해지기를 갈망하기를 패션산업 오너들은 바라겠지만, 선택의 주도권을 지키는 현명한 사람은 옷을 장비(equipment)로 사용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리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칼리 피오리나는 어린 시절 그냥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는데에 최선을 다하는 모범생으로 자랐다. 학부에서 중세 철학과 종교를 공부하고 로스쿨을 들어 갔지만 중퇴하고 뒤늦게 MBA과정을 마쳤다. 그녀는 첫 직장 AT&T에서 영업부서를 지원했다. 사무원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들은 귀동냥이 '제품을 알려면 영업을 해봐야 한다'는 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영업 미팅 장소는 놀랍게도 쇼걸이 나오는 곳 그녀가 만난 첫 상사는 영업의 신으로 불리는 사람이었는데 학생 같이 어리숙해 보이는 칼리를 무시하는 티를 냈다. 그러던 어느 날 처음으로 고객과 약속을 잡았다며 영업 미팅 준비를 하라고 했다. 입사 후 긴 시간 동안 영업실무를 접해 보지 못한 칼리는 자신도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상사는 허락했다. 그런데 며칠 후 약속된 미팅에 불편하면 같이 가지 않아도 좋다는 이상한 말을 했다. 상사가 알려준 미팅 장소는 '고객이 원하는 곳'이라고 했는데 알아보니 놀랍게도 스트립쇼를 하는 술집이었다. 그냥 공연만 하는 게 아니라 테이블마다 쇼걸들이 와주는 서비스가 있는 특별한 곳이었다. 설렘으로 열심히 준비를 하던 그녀는 혼란스러워졌다. 이 때는 1970년대로 과연 여성이 자신이 그 장소에 가는 것이 맞는가 고민할 수 있다고 본다. 칼리는 고민했지만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안 와도 된다고 상사가 먼저 말했지만 영업인으로서 온 기회를 그녀는 놓치기 싫었다. 어떤 옷을 입고 갈까칼리는 어떤 옷을 입고 갈지 전략을 세웠다. 그녀의 선택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딱 드러내는 것이었다. 업소의 여성과 완벽히 구별되는 미국 중산층 가장 보수적인 느낌을 연출했다. 감색 정장 자켓과 무릎을 덮는 기장의 스커트를 입고 목을 감싸는 카라가 세워진 블라우스를 입었다. 단추를 모두 채우고 그 위를 검은 색 리본으로 한 번 더 묶었다. 그녀는 이 때 Dress for Success for Women이라는 책을 참고했다고 한다. 고객에게 어필해야하는 것은 제품과 서비스, 영업은 신뢰에서 오는 것이제 부터 그녀의 행동을 상상해 보자.이런 차림을 갖추고 고객에게 설명할 브로셔와 계약에 필요한 서류를 챙겨 장식 없는 서류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약속장소에 간다. 택시 기사에게 장소를 말하자 기사의 눈이 커지고 다시 확인을 받는다. 도착한 장소에 내려 문을 열고 칼리가 등장하자 업소 안의 모든 사람의 눈도 휘둥그레진다. 칼리가 예상한 일이다. 따가운 시선이 그녀에게 몰리지만 고객이 앉아 있는 곳까지 당당하게 홀을 가로 질러 가는 것이다. 그녀는 최대한 주변에 신경쓰지 않고 고객에게 전달해야 할 내용을 브리핑한다. 물론 테이블 옆에서는 쇼걸이 춤을 추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녀는 몇 시간에 걸쳐 고객에게 그들에게 최적화된 상품을 정중하게 설명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그녀의 행동이 말하는 것은 여자도 남자도 아닌 그저 영업이다. 계약도 성공, 사내 입지도 성공결과는 BIA (인디언 문제 지원국 Bureau of Indian Affairs)에 데이터와 음성네트워크를 제공하고 미국 전역 인디언 보호지구에 통신 시스템을 지원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빅딜이 성사된 것이다. 이 일이 있은 이후 칼리는 영업의 대표주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많은 세월이 흘러 HP의 CEO자리에도 오른다. 칼리 피오리나의 스타일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장소에 나타난 대담한 목표의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어필, 일에 집중하는 태도. 이 모든 것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이 스타일링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을 보여 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진정성에는 힘이 있다. 이것이 호감의 비밀 중 하나이다. 지나간 이야기이고 성공적 결과가 있었으니 칼리 피오리나의 선택은 올바른 답이 되었다. 하지만 ‘동일한 상황에 내가 처한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보자. 자신이 할 선택은 어떤 것일까? 만약 고객취향이 이런 것이니 거기에 자신을 맞추려고 했다고 상상해 보자.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화살이 하나일 때, 과녁은 하나만 생각하자우리 대부분은 상대에게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에 대해 정말 확신할 수 있는가? 그 또는 그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뿐이다. 상대란 언제나 움직이는 과녁이다.우리에게 화살은 하나인데 상대에게 맞추려고 들면 과녁이 10배로 늘어난다. 성공확률이 줄어든다. 이럴 때는 그냥 그 하나의 화살로 진실된 자신의 목표 하나만 맞추면 된다. 수 많은 매거진은 옷에 대한 이해를 천박하게 하도록 만든다.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면 명품 브랜드를 옷을 입는다는 공식을 끊임없이 퍼트리고 이성에게 어필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만드는 면이 있다.매거진들이 이러는 이유는 패션 브랜드들이 아주 큰 광고주이기 때문이다. 이런 설득은 아주 널리널리 퍼져서 아직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성공한 것처럼 보이려고 고가의 옷을 산다. 대치동 학원가 강사 사이에서 톰 브라운은 가장 핫한 아이템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전에도 말했지만 진짜 부자의 돈질은 옷이 아니다. 저택과 헬기, 요트 뭐 이런 거다. 옷은 비싸봐야 몇 천만원 수준이다. 신문의 선정성도 마찬가지다. 정치 문화 시사 교양 전문이라 해도 매출을 일으키려면 가십과 눈요기가 필요하다. 포탈 사이트에 연결된 신문 중 여성 연예인의 짧은 치마와 각선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곳은 없다. 여성 혐오로 인한 범죄를 다룬 기사를 읽고 있는데 옆의 팝업창에 계속 그녀의 볼륨감이라는 헤드타이틀이 깜빡거린다. 우리 채널에 오신 김에 이것도 보고 가시라는 친절인지 몰라도 어떤 멘탈이면 그 두 개를 전혀 다른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 하여튼 그렇다. 실제로 스토리앤스타일에서 만나는 현실 고객은 어떤가? 스타일컨설팅에 오는 고객은 패셔너블해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패션을 자기 일의 도구로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들은 인생에서 가장 얻고 싶은 것이 좋은 인간관계이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고 자기개발 차원에서의 스타일과 커뮤니케이션을 궁금해 한다. 스타일링을 잘해서 자신의 커뮤니케이션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얼마나 현명한가! 그러나 여기에 대한 답을 주는 곳은 흔치 않다. 너무도 두텁게 쌓인 이 패션의 허상을 넘어 사람들이 선택의 주도권을 발휘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어떻게 살건 각자의 문제이나 허튼 소비에 골몰하느라 자신을 사랑할 시간을 놓치는 것이 아쉽다.